키움일기

[육와일기] 잘가 막내야

자히르 2021. 12. 6. 22:44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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개를 꽤 오랜 기간 길렀었다. 우리집 개는 그 시절 유행하던 국민애완견 시츄 였는데 (이름조차 개 10마리중에 8마리는 같은 이름이었던 아지), 13년 여를 살았으니 나름대로 지 수명을 다 누리고 죽었다. 10살이 넘어갈 때 쯤 인턴이다 교환학생이다 해외에 거주할 일이 많았는데 출국 전에 한동안은 내가 없는 동안 아지가 죽으면 어떡하나 그 생각 뿐이었다. 오죽하면 매주 skype를 걸어서 엄마한테 아지 한 번 비춰보라고 이미 죽었는데 거짓말하는거 아니냐고.

 

그러다 어느해 겨울인가 당시에 별로 가고싶지도 않았던 친척들과의 여행을 가느라 아픈 개를 두고 한 3박 쯤 집을 비웠는데 하필 그 사이에 덜컥 떠나버렸다. 집에서 돌봐주던 이모한테 아지가 죽었다는 전화를 받고 공항입국 심사대에서 집에가는 내내 울었던 기억이 난다. 12월 한 겨울이라 집에 왔을 때는 이미 온 몸이 뻣뻣하게 굳어있었는데 겨우 정신을 차리고 애완견 화장터를 찾아서 화장을 해줬다. 감수성이라곤 아주 메말라 붙었는데 이 때를 생각하면 아직도 눈물이 좀 난다. 그리고 나서는 정말이지 그 어떤 것도 기르지도 키우지도 않았다. 

 

그러다가 이 카테고리 첫번째 글에서 쓴 것과 같이 우연히 달팽이들을 기르게 됐다. 엄마도 나도 뭔가에 한번 정을 줬다가는 온갖 정성을 쏟는 스타일이라 (초딩 시절 학교 앞에서 파는 병든 병아리를 사다가는 아주 장닭을 만들었으니...) 시작을 말았어야 했는데 한 번 키우기 시작하니까 너무너무 귀여워서 하루에 1시간은 족히 공을 들였네. 들이는 시간과 소중함은 정비례해서 시간이 갈수록 달팽이가 좋아졌다. 자려고 누웠다가도 불키고 들여다 보고 들여다 보고, 남들이 보면 이상한 사람인 줄 알..껄..? 재택할 동안은 아예 모니터 앞에 두고 일했다 ㅎㅎㅎ 

 

처음에 노지 상추에서 나온 명주 세마리가 자꾸만 알을 낳아서 개중 가장 작았던 당근이(당근 중독이었음)와 알 10개를 제외하고 나머지는 모두 자연으로 돌려보냈다. 당근이는 야생에서 온 놈이라 몇 개월쯤 된 건지 가늠이 안됐는데 알을 낳았으니 그저 성체겠거니..하고 키우다가 우리집에 온지 4개월쯤 됐을 때 죽었다. 처음부터 응애벌레 라고 부르는 하얀 이 같은 벌레도 많았고 알도 많이 낳아서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도 예상보다 마음이 안 좋았다. 

 

알 10개 중 최종 부화에 성공한 달팽이 세 놈이 있어서 그나마 슬픔이 좀 덜했는데, 같은 알에서 나온 놈들이 어찌나 덩치 차이가 많이 나는지 제일 큰 놈 대비 작은 놈이 10배쯤 차이가 났다. 별로 먹지도 않는게 엄청 빨빨대고 잘 돌아다니고 근래에 눈에 띄게 좀 자라는것 같이 보여서 미안하지만 셋 중 내 최애였다.  

 

어머 쟤좀봐 쟤가 우리랑 동년배래~~~
아빠 등에 올라 타있는 새끼 같은 모습. 그러나 엄연히 형제 ㅎㅎ
이 사진 재탕인데 대중소가 제일 잘나와서.. 뚱뚱이는 여전히 압도적으로 잘먹는다. 
며칠 전까지만 해도 이렇게 잘 놀았는데..

오늘 퇴근하고 집에 와서 달팽이들을 보는데 막내가 죽어있었다. 처음에는 막을 친줄 알고 벗겨주려고 손톱으로 슬쩍 밀었는데 살이 삐죽 딸려나왔다. 요 며칠 계속 안 움직여서 불쑥 크려고 내리 자는 줄 알았는데.. 지난주부터 출장이다, 김장이다, 회사일이 바빠 제대로 들여다보지도 못 했는데 갑작스럽게 떠나버렸다. 갑자기 10년 전에 죽은 우리집 개도 생각나고 덧없다는 생각이 들었다.

 

달팽이들은 대체 왜 그렇게 갑작스럽게 죽는 걸까? 습도 때문인지, 온도가 너무 높았는지/낮았는지, 줬던 음식 중에 먹으면 안되는게 있었던 건지 L/L조차 안 남기고 어느날 갑자기 죽어버린다. 고양이한테는 고양이 별이 있고, 강아지들도 강아지나라에 간다는데 달팽이들도 어딘가 그런 공간이 있으면 좋겠다. 우리 집에서 태어나서 자란 생명체는 처음이었는데 이렇게 허망하게 떠나버리니까 좁은 곳에서 갇혀만 살다가 간 것 같아 미안하고 슬펐다. 그래서 무책임하게 엄마에게 떠넘기고 방으로 들어와 버렸는데 엄마가 베란다 여인초에 묻어줬다. 당연히 금세 또 일상으로 돌아가겠지만, 나는 아직도 추억의 소중함보다는 헤어짐의 슬픔이 두려운 어린앤가 보다. 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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